- 88년이 최고였어 –
* 우리나라 분위기는 1996년이
최고 아니었냐는 질문에 한 부자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1988년과 비교할 수 있는 해는 없다고 했습니다.
* 1985년 말 163p였던 KOSPI는 1986년말 272p,
1987년말 525p, 1988년말 907p까지
올랐습니다. 1987년의 92.6% 상승률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 1986년, 첫 경상흑자
–
* 1면 헤드라인은 “빚
갚는 해”였습니다. 1970~8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한
결실이었습니다. 현대차의 ‘엑셀’이 미국으로 수출됐고, 86 아시안 게임에서 양궁에 금메달을 12개나 걸면서 일본을 제쳤습니다.
* 직선제 개헌 요구가 전국으로 번졌고 전두환 정부는 북한이 금강산
댐을 건설하고 있어 서울이 물바다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조성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을 가져갔습니다.
- 1987년 첫 나이키 -
* 한편에선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갔지만 중고생들은 첫 나이키 신발을
샀습니다. 직장인들은 프라이드, 르망, 스텔라 중 첫 차를 장만했습니다.
* 금융, 건설, 무역주는 자고 일어나면 상한가를 쳤고 주식을 안하고 있으면 바보라는 조롱을 들었습니다. 객장에선 직원들이 커다란 칠판에 주가를 적어 넣었고 상한가라고 쓰면 투자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KOSPI는 500을 넘었습니다.
- 1988년 첫 해외여행 –
* 경제 성장률은 3년
연속 두 자릿수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의 모토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고 사람들은 홍콩,
대만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 사람들은 돈을 싸짊어들고 계속 몰려들었고 증권사 객장은 아무리
넓어도 좁았습니다. 정부는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위해 국민주 포항제철의 공모가를 낮게 설정했습니다. 청약 전날부터 은행엔 수백미터 줄을 섰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줄을 지키는 동안 은행은
문을 닫고 번호표 받은 사람들만 들여보냈습니다.
- 1989년 S&L -
* 1988년 141억달러였던
경상흑자는 50억달러로 3분의1이 됐습니다. 원화와 노조 둘 다 강했습니다. 유가와 금리가 올랐고 미국 경제는 저축대부조합 부실로 가라앉았습니다.
* 경상흑자가 줄면 가계의 돈도 줄고 그때 마침 비상장 대기업은 IPO를 합니다. 지금 유가와 금리는 높고, 미국은 1분기에 IT Capex를
빼면 성장이 없었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